손을 떼야하나?

"보고는 다 올려요. 최종 결정은 제가 합니다." 직원 스무 명일 때 만든 원칙을, 직원 여든 명이 된 지금도 지키는 대표가 있다. 결재판이 쌓이고 결정이 밀리는데도 그는 이 방식을 놓지 못한다. 내려놓는 순간, 회사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랭거의 1975년 실험이 고전이다. 복권을 직접 고른 사람들은 남이 골라준 복권을 받은 사람들보다 자기 복권을 네 배 이상 비싸게 팔려고 했다. 당첨은 순전히 운인데도, '내가 골랐다'는 사실 하나가 결과를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만든 것이다. 즉, 통제 환상(Illusion of Control) 이다. 관여했다는 느낌과 실제 통제력은 별개다. 그런데 우리 뇌는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대표의 의사결정도 똑같다. 모든 결정에 관여하면 통제하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다르다. 결정이 한 사람에게 몰리면 병목이 생기고, 판단의 질은 피로에 비례해 떨어지며, 조직은 대표의 결재를 기다리는 동안 멈춘다. 관여가 늘수록 통제감은 커지는데, 통제력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이다.
베인의 2026년 CEO 조사도 같은 그림을 보여준다. CEO들은 시간의 47%를 1년 미만의 단기 이슈에 쓰고 있었고, 5년 뒤를 내다보는 결정에는 16%만 쓰고 있었다. 모든 것에 관여하느라 정작 대표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에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AI 위임을 앞둔 결정에서 이 편향은 더 선명해진다. "AI가 틀리면 어떡하냐"며 직접 판단을 고수하는 대표가 많다. 맞는 걱정이다. AI도 틀린다. 그리고 사람의 직관도 틀릴 때가 많다. 차이는 하나다. 시스템의 오류는 측정하고 개선할 수 있지만, 감으로 내린 결정은 측정 자체가 안 된다. 틀렸는지도 모른 채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진짜 통제는 모든 결정을 내 손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손을 떼는 게 아니라, 손댈 곳을 고르는 것이다. 조직이 커짐에 따라 절대 피하면 안되는 최우선 결정사항이다.
AI가 초단기간 만들어내는 정보와 전략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한다. 어떤 정보를 무슨 기준으로 볼 것이며, 가장 그럴듯해 보여지는 정보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이다.
"나는 결정을 통제하고 있는가, 결정에 붙들려 있는가?" 리더는 이 질문에 스스로 솔직한 답을 할 수 있어야 병목을 찾아낸다.
SOURCES
Langer, E. J. (1975). The Illusion of Contro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ain & Company (2026). The 2026 CEO Agenda.